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용원 연쇄살인 사건 (문단 편집) == 검거 == 당시 청주서부경찰서 강력1팀 형사들은 김용원의 주변인물을 파악해 그가 청주의 한 재개발 구역의 폐가에서 은신했음을 알았다. 청주의 한 폐가에서 김용원의 [[대한민국 여권|여권]], 결혼증명서, 결혼 예정이었던 조선족 여성의 사진, 중국 도피에 필요한 물품과 도피 중에 끓여 먹었던 라면냄비, 소주병 등을 발견하였다.[* 최대한 주변 친척,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충분한 도피자금을 모으는 데 시간을 벌기 위해 폐가를 은신처로 정한 모양이다.] 경찰은 [[연쇄살인]]이란 [[강력범죄]]를 저지른 김용원이 도피하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만약 그가 생활비가 떨어지게 되면 그의 친인척이나 가족을 찾게 될 것이라고 판단해 그의 가족과 친인척들을 탐문수사하여 그가 방문할 만한 장소마다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하며 그가 갈 만한 여러 곳 중 한 곳이라도 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김용원은 2005년 6월 10일 3차 살인을 저지른 지 5일 후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외사촌형을 만나러 가다가 충북 [[청원군]] [[내수읍]]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에 의해 검거됐다. 당시 그는 자신의 범행 일체를 부인했으나 경찰의 집요한 추궁에 결국 자신의 범행을 털어놨다. >한 수사관은 “김씨가 계속해서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으나 증거와 정황을 들이대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자백 전 주변을 정리하려는 듯 중국에 있는 조선족 약혼녀와의 통화와 가족들과의 면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씨는 약혼녀와의 통화에서 안부를 전하며 “그냥 나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해라. 나를 잊고 다른 사람 만나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만을 전했다고 한다. > >그러나 김용원의 가족들은 애초 김용원과 면회를 거절했다고 한다. 성인이 돼 집을 떠난 후 고향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던 김용원이 살인자가 되어 나타난 것이 달갑지도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연을 끊고 지내온 가족들이 김용원을 이미 ‘버린 자식’으로 여겼기 때문. 경찰의 설득으로 어렵게 가족들과 면회한 김씨는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김용원의 연쇄살인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